게임제작 이야기

게임 무지렁이 상태

원소랑 2019. 3. 20. 02:53

10년 전엔 상상도 못했습니다. 현재, 2019년, 우리나라의 게임 현실이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오히려 후퇴했을 거라곤 말입니다.



꼬꼬마 초보 개발자 시절, 매년 세계적으로 개최되는 GDC와 같은 게임관련 학술회를 보면서 우리나라는 더더욱 발전할 것이라고 꿈꿨습니다만, 십수년이 지난 현실은 달랐습니다.


한 때(불과 얼마 전까지) 게임 문화 강국이라는 이야길 언론에서도 심심치 않게 해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호칭을 쓰기엔 산업 규모도 많이 축소됐고, 인식도 전혀 나아진 것 같지 않고, 대상을 특정하지 않은 포괄적인 게임 규제는 성장의 뿌리마저 말려 죽이고 있습니다. 부끄러운 현실이네요.


왜 아직도 게임 사전심의가 시행되고 있는가. 왜 게임셧다운제는 아직도 청소년들의 놀이 시간을 규제하고, PC 온라인게임의 싹을 잘라버렸는가. 왜 여전히 강력범죄자의 행동 원인을 게임에서 찾는가. 게임은 노는 것이고 노는 것은 나쁘니 게임도 나쁘다는 꼰대스러운 기적의 논리는 여전히 유효한 것인가.


이런 의문들에 대한 결론은, "게임이 뭔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말해, 2019년 현재까지도 한국에 뿌리깊은 게임에 대한 인식은 게임 무지렁이 상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봅니다.


무지렁이 [무지렁이]

[명사]

1. 아무것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



많은 게이머들이 한 번쯤은 봤을법한 원사운드님의 유명한 만화 한 컷이 있습니다.



게임은 그냥 하는거죠. 재밌으니까. 재미를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유희의 인간이라는 의미로 호모루덴스라는 용어까지 있을 정도이니까.

이렇듯 게임 플레이는 그냥 하면 되지만, 게임을 대상으로 플레이 이외의 것을 하려고 할 때는 그냥 하면 안 됩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실체가 뭔지 알아야죠. 게임을 만들거나, 분석하거나, 부흥시키려거나, 혹은 규제를 하거나, 비판을 하려면 어찌됐는 게임의 실체가 뭔지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 게임의 학문적 접근의 역사가 긴 해외의 자료나 서적, 게임계 인사들의 게임에 대한 정의는 이미 많이 나와있고 여러가지 정리가 존재합니다.

그런 정의들 이전에, 쉽게 단어로써의 게임에 대해 이야기 해봅니다.

"게임"은 그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놀이 규칙과 그런 작품, 상품, 제품들을 일컫는 통칭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통칭"이라는 부분입니다.

음식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먹거리들에 대한 통칭입니다. 음악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리듬, 규칙을 가지는 소리들의 통칭입니다. 인간 역시 세상에 존재하는 인종 나이 성별등을 고려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통칭입니다.

어떠한 것을 분석하고 다루려고 할 때, 구체적인 실체를 알아야만 합니다. 하지만 통칭은 말 그대로 통틀어 일컫는 용어일 뿐이고 실체는 특정할 수 없습니다. 즉, "게임"은 실체가 아닌 용어일 뿐이라는 말입니다.

쉽게 예를 들어볼까요?

영화 규제, 음악 규제, 만화 규제, 음식 규제. 이런 말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통칭은 용어일 뿐이지 실체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규제"라는 말이 성립되려면 대상이 실체화 할 수 있는 구체적인 것이어야만 합니다. "나체가 나오는 성인등급 영화 규제"라거나, "가사에 욕설이 들어간 음악의 방송 규제"같은 식으로 말이죠.

하지만, 게임 규제는 어떻습니까? 게임 사전심의 규제의 관련법령인 "게임산업진흥에 관련 법률"을 보면, 2조 1항에서 "게임물"을 아래와 같이 정의하고 있습니다.


"게임물"이라 함은 컴퓨터프로그램 등 정보처리 기술이나 기계장치를 이용하여 오락을 할 수 있게 하거나 이에 부수하여 여가선용, 학습 및 운동효과 등을 높일 수 있도록 제작된 영상물 또는 그 영상물의 이용을 주된 목적으로 제작된 기기 및 장치를 말한다.


법령에는 어렵게 써둔 것 같지만, 짧게 줄이면 상호작용을 통한 오락(엔터테인먼트)이라는 말입니다. 게임이라는 용어가 이토록 방대한 범위를 아우르는 통칭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포괄적인 "게임물"이란 통칭을 대상으로 여러가지 규칙을 달아뒀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 특히 문제가 되는 게임 사전검열에 해당하는 법조항이 아래 21조 1항입니다.


①게임물을 유통시키거나 이용에 제공하게 할 목적으로 게임물을 제작 또는 배급하고자 하는 자는 해당 게임물을 제작 또는 배급하기 전에 위원회 또는 제21조의2제1항에 따라 지정을 받은 사업자로부터 그 게임물의 내용에 관하여 등급분류를 받아야 한다.


"게임물"이 굉장히 포괄적인 통칭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조건에 해당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등급분류, 즉 심의를 받으라는 내용입니다.

게임과 관련된 법이라면, 최소한 실체를 특정할 수 있을만한 대상이 앞에 붙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게임물의 범위는 너무나도 포괄적이니까요. 그렇지 않고 법을 만들어두었으니 저도 이렇게 비판을 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만약 웹툰에서 사소한 사용자의 입력이 추가된다고 가정해봅시다. (사실 이미 존재합니다. 일부 컷툰이나 스크롤 위치를 입력으로 처리해서 특수효과를 보여주는 웹툰들이 있으니까요) 이 게임물의 정의에 따르면 그런 상호작용 웹툰도 엄연히 게임물입니다.

또, 시청자들에게 투표를 요구해서 영상을 진행하던 방송들은 어떤가요? 마찬가지로 위 법령의 정의에 따르면 게임물로 분류해서 사전등급분류를 받아야 하고, 다음화가 나올 때마다 추가 사전 심의를 받아야 합니다.

여러 앱이나 웹사이트에서 게미피케이션을 활용한 유저 참여형 컨텐츠를 제공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이 모두가 게임물에 해당합니다.


게임은 통칭이고, 법령에서도 나오듯 너무나도 포괄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제대로 실체를 파악해서 특정하지 않으면 정상적인 처리가 불가능한 것이 바로 게임입니다.




정리하자면,

게임은 상호작용하는 모든 엔터테인먼트의 통칭입니다. 아주 많은 것들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용어이기 때문에 다양한 종류의 게임들이 존재하는 것이고 계속해서 새로운 게임들도 생겨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칭인 "게임"에 대해 무언가를 논하려면, 구체적으로 어떤 게임을 말하는 것인지 구체적인 게임을 대상으로 특정해야 합니다.


"게임은 나쁘다?"는 말은 "음식은 맛없다"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이 엉뚱한 말이 됩니다.

"게임은 무섭다?"는 말은 "영화는 슬프다"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이 엉뚱한 말이 됩니다.


위에서 예를 들었듯, 게임은 통칭이기 때문에 말하고자 하는 게임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더 이상 게임 무지렁이 상태에 머물러 있지 말고, 논하고자 하는 게임이 무엇인지 그 실체에 대해 논의해야 하겠습니다.




참고링크


국가법령정보센터 :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http://www.law.go.kr/%EB%B2%95%EB%A0%B9/%EA%B2%8C%EC%9E%84%EC%82%B0%EC%97%85%EC%A7%84%ED%9D%A5%EC%97%90%EA%B4%80%ED%95%9C%EB%B2%95%EB%A5%A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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